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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커트를 입고도 야무지게 산길을 오르던 상미가 현기증이 나는지 덧글 0 | 조회 91 | 2020-03-18 20:12:31
서동연  
스커트를 입고도 야무지게 산길을 오르던 상미가 현기증이 나는지 순간 소나무를 짚고 비틀했다. 고지의 8부 능선쯤 되는 곳이었다.『별일 없으면 안드로메다에 같이 갈까 싶어서.』연화의 톡톡 쏘는 말투에 하수지는 저으기 놀라고 있었다. 무소불위의 재벌 앞에서 서슴없이 말대꾸를 하는 그녀의 배짱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아뇨, 혹시 찾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온 거예요.』『저번에 만났던 그 남자 있죠? 이동선이라는 희수 파트너.』그는 담뱃가게 골목의 막다른 집에 이르러 대문을 두드렸다. 늦은 시각인데도 집 안쪽에서 걸어나오는 초로의 부인은 그에게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따지고 보니 유정의 판단은 더욱 그럴 듯했다. 사랑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은 무한해도 그 세계로 선뜻 걸어가지 못했던 희수의 약점을 유정은 정확하게 내다보고 있었다.관상으로 미뤄 보건대, 다소 내성적이고 곱게 자랐을 것만 같은 쥰꼬였지만, 그녀는 의외로 대담했다. 라는 명제 앞에서도 망설임 없이 프리를 주장했고, 일부일처제의 사회관습을 비난했으며, 동양 여자들의 궐기를 부르짖었다.그녀가 한참 울고 나서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하나 뜯어서 돈이 돼?』『새로 옮긴 방 괜찮던가요?』혜성처럼 내 삶의 한 획을 그은 남자.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며칠 전 방송국 PD가 잠입했던 일도, 아직 세상의 이목이 그를 쫓고 있다는 경고도, 지금쯤 필요한 얘기였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당분간’이라는 말 속에 그 모든 의미를 실어 전했던 거였다. 그것이 동선을 위해 가장 알맞은 그녀의 화법이었다.『어떤 사람이면 좋겠니?』그녀는 문득 고향 시코쿠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는 전설 하나를 떠올렸다. 신혼 초야의 신부만을 훔쳐간다는 사랑의 화신에 관한 이야기를.그는 멈춰선 곳의 벽돌 더미에 아무렇게나 앉아서 그녀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혔다.그가 오른손을 한 번 쓱 쳐들어 보이고는 곧장 떠나가 버리자 그녀는 돌덩어리로 모자이크된 광장에 달랑 혼자 남았다.희수, 희수가 몇 번이더라?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는데도 그녀
내가 분실한 시간을 누가 주워 갔을까?『친구가 올 거야.』『후훗, 여기서 역전되는군. 어때, 역시 게임은 끝까지 해 봐야 아는 거라고! 자넨 내 집중력을 너무 무시했어.』상미는 피아노 의자에 앉아 벽에 걸린 결혼기념사진을 보았다. 스물네 살의 동갑내기 신랑과 신부는 천진스런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선글라스와 점퍼를 벗고 말쑥 카지노사이트 한 신사로 변신한 사람은 팀장 조재봉 PD. 조재봉은 기존 공중파 방송국에서 사회성 짙은 고발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듀서로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얻은 후, 신설 Wnet의 팀장으로 스카웃된 경력의 소유자였다.그녀가 동선 바로 옆의 소파를 가리켰다.일권은 해우소에 기거하면서 오후 시간은 책을 읽거나 글을 써왔다. 희수의 중개로 방송쪽 일을 틈틈이 해야 했지만, 카페를 경영하면서부터는 소설작업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시대감각에 맞는 소설 한 편을 그럴듯하게 완성할 계획이었다.이제 저 중국 여인의 삶은 이전과 판이하게 달라지리라. 그녀의 국적은 홍콩이라 했으므로 97년 본토 반환에 대비해 묘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뉴질랜드 은행에 예치해 두고 이민을 오는 방법도 괜찮을 것이다. 밀리언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 곳에서는 목장이 딸린 저택에 최고급 승용차를 굴리며 평생을 유유자적하게 살 수 있을 테니까.『파리에 있을 땐 정말 자신만만했어요. 내 손으로 만진 모든 사물이 작품으로 변하곤 했으니까요. 근데 귀국해서 절망했어요.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내 영혼은 주눅이 들어 있었던 거죠. 하지만 언젠가는 내 손가락을 사 줄 사람이 나타날 줄 알았어요. 피그말리온의 신화처럼.』미술 진흥을 위해 만들어진 강제규정이었다. 건축주는 설계할 때부터 조각가를 미리 선정해야 하고 건물의 환경을 위해 1%의 작업료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고생만 사서 하고 왔지, 뭐.』문이 열리자, 일권은 부인의 손목을 잡고 고개를 숙였다.『마지막 애인이라? 그래서 의무감을 느끼신 거로군요?』그녀는 몇 번이고 눈을 깜박이며 발광처를 확인했다. 뜻밖에도 호숫가 잔디밭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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